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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짓도 계속하면 정체성이 된다 - 아이덴티티 이야기

맥가 2020. 3. 9. 13:49

안녕하세요. 맥가입니다. 이번 글을 마지막으로 당분간은 뭔가를 끄적거리는 행동을 그만두려 합니다. 지난 몇 개의 글을 작성하면서 느낀점이 많았습니다. 확실히 제 디자인 감각이 어디엔가 많이 머물러 있네요. 실용적인 부분 그리고 개발적인 이슈들을 염두하다 보니 자꾸 틀에 갇힌 결과물을 만들어내고 있더라고요. 자책을 좀 더 하여 쓸만한 디자이너가 되는 시간을 가져야겠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습니다.

오늘은 신입, 초년생들이 꽤 많이 어려워하는 부분인 '아이덴티티'에 대해 써보려 키보드를 두드립니다. 물론 인터넷상에 이와 관련한 글 많이 있습니다만, 개개인 그러니까 각자가 아이덴티티를 이해하기 위해 맞닿아있는 부분. 이러한 부분들을 고려해, 누가 보아도 조금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는 형태로 풀어내려 노력해 보았으니 그간 아이덴티티라는 개념이 어려웠다면 본 글을 계기로 그에 대한 고민이 조금 풀리기를 희망합니다. 그럼 시작합니다. 요이땅!

동그라미 3개로 이루어진 실루엣, 무엇이 떠오르시나요?

아이덴티티(identity)의 사전적인 의미를 찾아보면 '정체성'이라는 우리말로 풀이됩니다. 이렇게만 보면 어렵지 않습니다. 고등교육 이상을 받은 자라면, 어렵게 않게 단어의 의미를 알 수 있으니까요. 허나 이것을 웹 아이덴티티로 풀어 설명하라면 많은 디자이너들이 어려워합니다. '본인의 정체성을 말하라' 하면 적게는 10초 또는 그 이상을 떠들 수 있는데, 웹이나 특정 서비스에 연관 지어야 한다면 막상 할 말이 없습니다. 나는 사람이지 '웹'이나 '서비스'가 아니니까요.

그럼 쉬운 접근을 위해 우리가 많이 접해본 캐릭터에 접목해봅니다. 위 이미지안에 3개의 동그라미로 이루어진 실루엣이 있습니다. 무엇이 떠오르시나요? 네. 바로 디즈니의 대표 캐릭터인 '미키마우스'입니다. 별다른 고민 없이, 또 오래 들여다보지 않아도 단번에 미키마우스가 떠오릅니다. 바로 이것이 미키마우스라는 캐릭터가 가진 개성이자, 장기간에 걸쳐 쌓여온 정체성의 일부입니다.

웹 또는 기업 아이덴티티가 형성되기 위해 필요한 4가지 조건들이 있습니다. 개성있는 차별성, 기업이나 서비스가 연상되는 동일성과 일관성 그리고 이 세 가지를 계속되게 하는 지속성입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지속성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제목에도 적어두었듯 뭔가를 계속 반복하고 그 시간이 증가할수록 아이덴티티가 형성될 확률은 높아집니다. 비록 그것이 뭔가를 카피해 차별성 없거나 모호한 동일성을 지녔다 해도 말이죠.

'짝퉁' 애플이라는 평가를 받던 샤오미, 불완전하긴하나 그들의 아이덴티티가 형성되고 있다.

캐릭터만으로는 뭔가 부족하니 다른 분야를 살펴볼까요? 문학, 대중가요 등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다른 분야에도 꽤 성공적으로 아이덴티티를 형성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자기 자신을 기가 막히게 브랜드화시킨 인물들 말이죠.

웹소설 작가 '귀여니'의 독특한 문체

과거 귀여니의 소설을 처음 보셨던 분이라면 아실겁니다. 메가톤급 센세이션을 일으킨... 만화를 공부하던, 하여 시나리오나 시놉시스를 많이 쓰던 저에게 귀여니의 문체는 어찌 보면 형식을 파괴한 '애들 낙서 수준의 글'이었습니다. 저와 마찬가지로, 글을 쓰던 많은 사람들이 그녀를 비판했습니다. 허나 그녀는 굴하지 않았지요. 이모티콘이 난무하고 맞춤법을 파괴한 그녀의 글짓기는 계속되었습니다. 결국 그녀만의 개성을 지닌 문체는 일관성과 지속성이 더해져 '귀여니'만의 아이덴티티로 자리 잡았습니다.

그러한 아이덴티티는 곧 인터넷소설이라는 신장르에 훌륭하게 안착했고 세대를 관통하는 독특한 필력으로 '그놈은 멋있었다', '늑대의 유혹'등의 영화로까지 제작됩니다.

대한민국 대표 혼성그룹 '쿨' - 가운데 유리의 뒷 배경 때문에 미키마우스가 연상된다

적어도 한번쯤은 보셨겠지요? 쿨 세대가 아니어도 얼굴을 아실 테니 말이죠. 맨 처음 쿨이 데뷔했을 당시 그들은 딱히 이렇다 할 정체성이 없는 그룹이었습니다. 몇 번의 앨범을 내는 과정을 통해 댄스 그룹으로 확실한 방향을 정하고 대한민국의 4계절 중 여름에만 신보를 발표합니다. 결국 그들은 '여름'이면 생각나는 대표 혼성 그룹이 되었지요.

자 이정도면 얼추 '아이덴티티'라는 단어가 머릿속에 들어왔을까요? 그럼 본격적으로 웹 아이덴티티로 넘어가 봅니다. 웹 아이덴티티에서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요소인 '로고'와 '컬러'부터 이야기해보죠.

대한민국 대표 검색 포털인 '네이버' 로고의 변천사

98년 네이버가 처음 등장했을 때를 제외하고, 네이버는 그들만의 컬러인 녹색을 지금까지 고집합니다. 네이버의 모든 웹페이지의 UI, 그리고 각종 인쇄물, TV CF 등에서도 동일한 컬러와 심볼, 로고를 사용했습니다. 트렌드를 살짝 반영해 가며 아주 미묘한 변화만 주었을 뿐이지요. 결국 이 같은 네이버의 노력은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보는 시점에서 큰 성공을 거둡니다.

덕분에 현 실무를 지내는 많은 디자이너들이 새로운 브랜딩이나 UI요소에 녹색을 사용하는 것을 많이 꺼려합니다. 트렌드를 압도해 누구나 좋아할 만한 녹색을 선정했다 해도 '네이버'가 각인시킨 녹색을 이길 자신이 없으니까요. 이만큼 한 가지의 색상으로 강력한 아이덴티티를 구축한 기업이 국내에 또 있을까요? 자, 또 다른 UI 요소인 아이콘을 살펴봅니다.

편의점 프랜차이즈인 CU의 BI와 관련 아이콘 - 플러스엑스

위 이미지는 2017년 플러스엑스에서 진행했던 CU의 BX리뉴얼 프로젝트의 한 부분입니다. 주목해야 할 부분은 심볼 상단의 정중앙입니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보아오던 말풍선의 쉐입을 의도적으로 불완전하게 만들어 '개성'을 부여했습니다. 바로 차별성입니다. 기존 말풍선이라는 요소에서 크지 않은 그리고 많은 변화를 주지 않았지만 우측에 나열된 아이콘에서도 동일한 '개성'을 부여해 아이덴티티 요소로 만들어내는데 힘을 줍니다. 컬러 또한 당연히 함께 가져갑니다. 해당 프로젝트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본문 맨 하단 링크로 대체합니다. 시간 나실 때 한 번씩 둘러보셨으면 합니다.

새벽배송이 아니다. 샛별배송이다. 마켓컬리.

로고나 컬러 이외에 기업전략, 서비스 정책등으로 아이덴티티를 구축하는 사례도 존재합니다. 바로 '보라색'과 '전지현'이 떠오르는 기업 마켓컬리입니다. 2014년 설립 이후 별다른 액션이 없던 마켓컬리는, 2018년부터 브랜드 컬러인 보라색과 강력한 CF모델인 전지현을 필두로 공격적인 마케팅에 돌입합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색상과 모델보다 그들의 '슬로건'에 주목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바로 '샛별배송'입니다. 사실 직관적이지 못합니다. 정확하게 어떠한 시간대가 떠오르지도 않습니다. 뭉뚱그려 새벽대의 시간이 떠오를 뿐입니다. 왜 모두가 사용할만한 직관적이며, 단번에 이해할 수 있는 '새벽배송' 아닌 '샛별배송' 일까요? 이 또한 그들의 아이덴티티를 구축하기 위함입니다. 직관적이며 사실적인 표현을 떠나 비유적이고 개성 있는 표현법.

이제 '샛별배송'은 새벽배송이란 서비스를 대체하는 표현 수단으로 마켓컬리를 대표하는 단어가 되었습니다.

찾아보면 아이덴티티 관련해서 참 다양한 사례들이 있습니다. 그러한 사례들을 살피고 읽는 과정을 통해, 모호했던 그리고 실무를 더 혼란스럽게 만드는 것들을 조금은 더 쉽게 그리고 빨리 벗어날 수 있겠지요. 좋은 디자인을 통한, 그리고 섬세하고 창의력 있는 디자인이 아니어도 된다고 생각합니다. 이미 세상엔 수많은 아이덴티티들이 존재하고 그것들과 차별되는 아이덴티티를 구축하는 것은 사실 불가능에 가깝다고 생각하니까요.

작은 차이로 개성을 만들고 그것을 지속하는 것. 아마 이것이 현 실무에서 좋은 아이덴티티를 구축하는 최선의 방법이 아닐까요? 허나 어려울 겁니다. 아니 어렵습니다. 클라이언트나 우리가 속해있는 기업은 이러한 아이덴티티를 구축하는 행위나 이를 지속할 시간적 여유 등의 기회를 주지 않으니까요. 최소한 '잊지는 말자'라는 의견 드리고 싶습니다.

늘상 '요이땅'으로 시작해 '하여', '그리고', '또한'등의 단어들을 자주 활용해 글을 썼고 비슷한 어투로 끝맺음을 맺습니다. 제가 글을 쓰는 일종의 버릇 같은 것이지요. 언젠가 제 정체성을 다시 찾고 난 그다음에, 또다시 '요이땅'으로 시작하며 찾아뵙겠습니다. 오늘도 길고 딱딱한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ps. 요즘 유튜브등에서 정확하지 않은 이론을 바탕으로 디자인 실무를 강의하는 경우가 많이 보입니다. 물론 이러한 것조차 누군가에겐 도움이 되겠지만, 그것이 꼭 정답이 아님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다양하게 보세요. 좋은 공부를 위해 많은 걸 보세요. 뭔가 뒤죽박죽이 될 순 있겠지만 그리해야 언젠가 좋은 것들만, 쓸만한 것들만 머리에 남습니다.

플러스엑스의 CU리뉴얼 프로젝트https://plus-ex.com/experience#cu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