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다반사

우리 딸 서울가서 이쁨받아라!

맥가 2020. 4. 5. 01:46

"아빠, 내가 들면 된다."
"됐다. 마. 아빠가 들께."
"나도 힘쎈데."

기어코 아빠는 막내딸의 무거운 캐리어를 들고 열차칸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까치발을 들고 좌석 위 짐칸으로 캐리어를 밀어 넣습니다. 참 크다 생각했던 아빠였는데 오늘은 우리 아빠가 많이 작아 보입니다. 틀어진 옷매무새를 고치며, 아빠는 덤덤한 표정으로 제게 한마디 건넵니다.

"짐이 이게 다가?."
"어 다른건 나중에 택배로 좀 보내도, 방에 자리도 없다."
"알았다. 잘 챙겨묵꼬. 도착하면 전화해라."

바람 빠지는 소리와 함께 열차 문이 닫히고, 차창 밖 플랫폼 위에 서있는 아빠가 보입니다. 왼손을 이마에 얹어가며 제가 있을 법한 자리를 찾습니다. 밖에선 열차 안이 잘 안 보이나 봅니다. 나를 본 건지 못 본 건지... 이윽고 열차가 출발하자 아빠는 팔을 들어 허공에 휘적거립니다. 차창에 이마를 문 데 가며 아빠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손을 흔들어 봅니다.

이번 달 들어 세 번째 서울 상경입니다. 면접 보러 한번, 방 구하러 한번. 이번엔 진짜 올라가는 겁니다. 남들보다 좋은 조건이라는 연봉 2400 짜리 직장을 구했지만 방세가 월 60만 원이라 걱정이 많이 됩니다. 점심도 제 돈으로 사 먹어야 합니다. 그래도 어찌어찌 모으면 다음 달 첫 월급 때는 부모님 선물 하나쯤은 사서 부산으로 꼭 내려오지 싶습니다.

밤새 잠을 설쳐서 피곤한데도 잠이 오질 않습니다. 서울에 도착한 것도 아닌데 지도 앱을 열어 내일 출근길을 다시 한번 확인합니다. 회사 사이트도 다시 한번 봅니다.

얼마 후 도착한 서울. 제가 지낼 방을 다시 한번 훑어봅니다. 지난번 봤을 때보다 뭔가 많이 삭막해 보입니다. 화장실은 안에 있는데 주방은 밖에 있는 공용 주방을 쓰랍니다. 네. 이게 TV에서만 보던 고시원인가 봅니다. 건물 밖 걸려있던 간판은 뭔가 멋스럽고 세련된 이름이었는데... 이름만 그랬습니다.

한 두어 시간이나 잤을까요? 어차피 잠도 안 오는 거 이불을 걷어차고 바지런을 떱니다. 출근길, 골목에 보이는 커피숍에서 따뜻한 아메리카노 한잔도 사서 손에 들었습니다. 기분이 묘합니다. 첫 직장. 그리고 서울. 사무실에 도착했더니 아무도 없습니다. 도어록 비밀번호도 모르는데... 아무튼 그렇게 제 첫 사회생활이 시작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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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실무에서 만난 지방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동료이자 팀원이며 후배인... 무엇보다 저의 아내가 부산사람입니다. 서울 경(京), 사랑 애(愛). 서울 가서 사랑받으라고 장인 어르신께서 지어주신 아내의 이름입니다. 모자란 남편을 만난 터라 이름대로 살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실무를 지내다 보면 지방에서 올라와 연고도 친구도 없이 하루하루를 지내는 사람들을 많이 만나게 됩니다. 그들에게 묻습니다.

"뭐단다고 올라와서 이 생고생을 하냐?"
"지방에는 디자인할 곳이 없어요. 연봉도 차이 많이 나고요."

답답해집니다. 안쓰럽기도 하고, 그들이 직면한 현실이 일부 공감되어 짜증도 나고... 제가 아는 말론 달리 형용할 수가 없습니다. 그냥 답답합니다. 이름만 세련된 월 60만 원짜리 고시원에 살며, 차라리 저녁을 때울 수 있는 야근이 낫다 말하는. 나라에서 돈을 준다는 핑계로 그들에게 채운 '청년내일채움공제'라는 2년간의 족쇄.

달리 도망칠 곳도 없어 보입니다. 고향으로 돌아가도 결국 다시 올라와야 한답니다. 다른 곳으로 옮길 자신이 없다 합니다. 딱히 해줄 조언이 없습니다. 그냥 버티라 할 뿐. 차라리 채용하지 말았어야 할 것을... 그들의 꿈을 실현시켜 준다며 괜한 오지랖을 떨었나 봅니다. 머릿속에 자꾸 그 말이 맴돕니다.

"우리 딸 서울 가서 이쁨 받을 거다!"